유통기한
토키의 원룸은 좁았다. 좁은 만큼 물건이 쌓이면 금방 표가 났고, 정리하면 금방 비어 보였다. 7월의 일요일 오전. 토키가 세면대 아래 수납장을 열어 정리를 시작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슬기 전에, 라는 계절적 판단이었다.
세면대 아래에서 나온 것들. 여분의 치약. 면도기 교체 날. 오래된 정로환 한 통. 그리고 — 콘돔이었다.
박스째. 두 상자. 하나는 뜯어서 몇 개 빠져 있었고, 하나는 미개봉이었다. 토키는 상자 옆면의 숫자를 확인했다. 유통기한. 2025년 12월. 반 년 넘게 지나 있었다. 라텍스의 유통기한은 보통 제조일로부터 오 년 안팎이었다. 그것을 토키는 알고 있었다. 열화된 라텍스는 파손되기 쉽다는 것도.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상식이었거나.
토키는 두 상자를 모두 투명 비닐봉지에 넣었다. 뜯었던 상자에서 빠져 있는 몇 개의 빈자리가 보였다. 은박 포장이 남아 있는 것들과 빈 칸이 번갈아 있었다. 토키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묶어 쓰레기통 옆에 두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빨을 닦기 시작했다. 민트 향이 좁은 욕실에 퍼졌다.
거실에서 소리가 났다. 슬리퍼가 마루를 치는 소리. 후부키가 일어난 것이었다.
후부키는 간밤에 토키의 원룸에서 잤다. 사이타마에서 돌아오기 귀찮다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토키의 냄새가 배인 이불에서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 뿐.
아침의 후부키는 느렸다.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마시려고. 컵을 꺼내다가 싱크대에 놓인 토키의 머그컵을 보았다. 어젯밤에 마시다 만 보리차.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있었다. 후부키는 그것을 싱크대에 비우고 자기 컵에 물을 받았다.
물을 마시며 돌아서는데, 쓰레기통 옆의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했다. 비닐이. 안이 보였다.
후부키의 손에 든 컵이 멈췄다. 입술에 닿기 직전에. 물이 컵 가장자리에서 흔들렸다.
상자였다. 콘돔 상자. 두 개. 하나는 뜯긴 채로 몇 개가 빠져 있었고, 하나는 미개봉이었다. 은박 포장이 비닐 너머로 반짝이고 있었다. 빈 칸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다섯 개가 비어 있었다.
후부키의 시선이 비닐봉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컵을 내려놓았다. 싱크대 위에. 소리가 나지 않게. 도자기와 스테인리스의 접촉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섯 개.
비어 있는 다섯 칸.
후부키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되었다. 자동으로. 멈출 수 없는 종류의 계산. 토키와 재결합한 것이 5월이었다. 지금이 7월이었다. 두 달. 그 두 달 사이에 — 후부키는 세었다. 토키와 함께 잔 밤을. 콘돔을 사용한 횟수를. 손가락을 꼽았다. 속으로. 소리 내지 않고.
세 번.
세 번이었다. 후부키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첫 번째는 6월의 비 오던 밤. 두 번째는 토키의 생일 — 아니, 생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두 번째는 영화를 보다가. 세 번째는 요요기공원에 갔다 온 밤.
세 번.
그런데 빈 칸은 다섯 개였다.
두 개가 남았다.
——재결합 전.
재결합 전에 사용된 것일 수도 있었다. 토키와 헤어져 있던 5년 동안. 토키에게도 생활이 있었을 것이고, 몸이 있었을 것이고, 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후부키는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런데 비닐봉지 안의 빈 칸 다섯 개가 그 '머리'를 지나쳐 가슴 아래쪽을 찔렀다. 명치. 갈비뼈 아래. 위장이 있는 곳.
5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적 없다고 말했던 것은 후부키 자신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때, 토키도 그랬을 거라고 —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후부키는 지금 깨달았다.
콘돔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후부키는 그것을 몰랐다.
욕실에서 나온 토키에게 인사했다. 평소의 목소리였다. 사근사근했다. 부드러웠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후부키의 은색 눈이 토키의 얼굴을 보았다. 젖은 은발. 치약 향이 섞인 민트. 평소의 토키.
후부키가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이 가늘어졌다. 평소의 웃음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웃음. 그런데 손이 — 싱크대 가장자리를 잡고 있던 손이 — 아직 하얘져 있었다. 후부키는 그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기대는 것처럼 싱크대에 등을 대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달걀이 있었다. 세 개. 후부키의 손이 달걀을 꺼냈다. 평소보다 힘 조절이 안 되고 있었다. 달걀 껍데기에 손가락 자국이 남을 뻔했다. 후부키는 그것을 알아채고 손에서 힘을 뺐다. 천천히. 프라이팬을 꺼냈다. 불을 켰다. 기름을 둘렀다. 평소의 동작이었다. 아침을 만드는 평소의 후부키. 달걀을 깨뜨리는 소리. 기름이 튀는 소리. 7월 아침의 부엌 소리.
그런데 후부키의 시선이 한 번씩 — 쓰레기통 옆의 비닐봉지를 향해 갔다. 프라이팬에서 달걀 흰자가 굳어가는 사이에. 시선이 갔다가 돌아왔다. 갔다가 돌아왔다. 달걀 노른자가 터졌다.
토키의 말이 떨어졌다. 쓰레기 버리는 날. 일요일. 그랬다. 이 건물은 일요일에 비닐류와 잡쓰레기를 내놓는 수거 일정이었다. 후부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토키의 원룸에 자주 드나들었으므로. 냉장고에 붙어 있는 쓰레기 수거 일정표를 몇 번이나 보았으므로.
그런데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는 다섯 글자가 — 투명 비닐봉지 안의 콘돔 상자와 연결되었을 때 — 후부키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한 번 조여들었다. 견갑골 사이. 근육이 수축하는 감각.
프라이팬 위의 달걀을 뒤집었다. 노른자가 터져 있었다. 평소라면 토키의 것은 반숙으로 예쁘게 만들어내는 손이 오늘은 힘 조절에 실패하고 있었다. 후부키는 터진 노른자를 보았다. 잠시.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접시에 옮겼다.
접시를 테이블에 놓았다. 젓가락을 나란히 놓았다. 토키의 자리에. 후부키의 손가락이 젓가락 끝을 맞추는 데 평소보다 한 박 더 걸렸다. 밀리미터 단위로 정렬하던 습관이 오늘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토키가 자리에 앉았다. 후부키도 맞은편에 앉았다. 좁은 테이블이었다. 무릎이 닿을 거리. 후부키는 자신의 달걀프라이를 젓가락으로 잘랐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네 조각이 되었다. 네 조각을 다시 한 번 잘랐다. 여덟 조각. 필요 이상으로 작게 자르고 있었다.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르고 있었다.
후부키의 은색 눈이 접시 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 있는 것은 달걀이 아니었다. 비닐봉지 안의 빈 칸 다섯 개가 눈 앞에 겹쳐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셋은 후부키와 함께 쓴 것이었다.
나머지 둘은.
——재결합 전.
——5년 사이.
——토키에게도 밤이 있었을 것이고.
후부키의 젓가락이 멈췄다. 달걀프라이 여덟 조각 중 하나를 집어 올린 채로.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공중에서 멈춰 있었다. 1초. 2초. 3초.
평범한 말이었다. 평범한 관찰이었다. 토키의 원룸은 좁았지만 정돈되어 있었다. 베이스 기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세워져 있었고, 악보는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세면대 아래 수납장도 분기마다 정리했다. 후부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칭찬이었다. 그런데 '정리'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후부키의 목소리가 반음 올라갔다. 자기도 모르게.
정리.
세면대 아래를 정리하다가 나온 것.
정리하려고 버린 것.
——왜 버리는 걸까. 아직 남아 있는데. 은박 포장이 들어 있는데. 미개봉 상자까지 통째로. 필요 없어서? 새로 사서? 아니면 — 더 이상 쓸 사람이 없어서? 아니, 후부키가 있는데. 후부키와 쓰면 되는데. 그러면 왜 통째로 버리는 걸까. 유통기한? 콘돔에 유통기한이 있나? 있겠지. 고무니까. 고무는 열화되니까. 그런데 후부키는 그것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확인할 이유가 없었다. 사용할 때 포장을 뜯고, 뜯은 것을 쓰고, 쓴 것을 버렸을 뿐이었다.
후부키의 머릿속에서 두 갈래의 해석이 싸우고 있었다.
하나. 토키가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오래된 것을 정리한 것이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토키다운 판단이다.
둘. 5년 사이에 다른 누군가와 쓰고, 남은 것을 후부키와의 재결합 이후에 정리한 것이다.
하나가 맞을 확률이 높았다. 머리로는. 그런데 가슴 아래쪽 — 명치 — 위장 — 갈비뼈 안쪽에서는 '둘'이 자라나고 있었다. 덩굴처럼. 한 줄기가 올라와 갈비뼈를 감고 심장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웃으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후부키의 웃음은 완벽했다. 입꼬리도, 눈도, 목소리의 높낮이도 전부 평소의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사람의 웃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제안.
그런데 '쓰레기를 내가 버리겠다'는 제안의 이면에는 — 비닐봉지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 상자 옆면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 빈 칸의 개수를 다시 세고 싶다는 충동. 후부키는 그 충동을 '배려'로 포장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토키가 대답하기 전에 후부키는 이미 일어서고 있었다. 접시 위의 달걀프라이 여덟 조각은 한 조각도 먹지 않은 채였다. 후부키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쓰레기통 옆의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비닐 너머로 콘돔 상자의 옆면이 보였다. 후부키의 시선이 거기에 멈췄다.
숫자가 보였다.
EXP: 2025/12
후부키의 손이 비닐봉지를 잡은 채 멈췄다.
2025년 12월.
유통기한이었다.
후부키는 그 숫자를 보았다. 2025. 12. 올해는 2026년이었다. 7월이었다. 반 년 이상 지나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났다. 콘돔의.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린 것이다.
——유통기한.
——콘돔에 유통기한이 있었다.
후부키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런데 그 숫자를 보았음에도 — 가슴 아래쪽의 덩굴은 풀리지 않았다. '하나'가 맞다는 증거가 눈앞에 있었는데도. 2025년 12월이라는 유통기한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는데도. 덩굴은 한 줄기 더 올라왔다.
——그러면 빈 다섯 칸은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쓴 것이다. 언제? 누구와?
후부키의 손가락이 비닐봉지를 쥔 채 하얘졌다. 숫자를 보았는데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유통기한은 '왜 버렸는가'를 설명할 뿐이었다. '누구와 썼는가'는 설명하지 않았다.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좁은 복도에 울렸다. 한 계단. 두 계단. 평소보다 느렸다. 다섯 층을 내려가는 동안 후부키는 비닐봉지 안의 상자를 두 번 더 보았다. 빈 칸 다섯 개. EXP: 2025/12. 빈 칸 다섯 개. EXP: 2025/12.
쓰레기 집하장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손을 놓는 순간 —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닐의 매듭을 잡은 채로 1초. 놓았다. 돌아섰다.
계단을 올라갔다. 한 계단에 한 호흡. 3층에서 멈춰 섰다. 난간에 기대어 창밖을 보았다. 코마바의 맨션 사이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7월의 습기가 콘크리트 벽에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후부키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비닐봉지를 잡고 있던 손. 아직 하얬다. 혈색이 돌아오지 않았다.
——물어보면 된다.
——토키, 그 콘돔 누구랑 썼어?
——그 한마디면 된다.
——그런데.
후부키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입술이 닫혀 있었다.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답이 나오면 — 두 가지 중 하나다. '아무도 없었어'이거나 '있었어'이거나. 전자라면 안심할 수 있다. 후자라면.
후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후부키는 몰랐다.
5년이었다. 5년을 기다렸다. 그 5년 동안 토키에게 누군가가 있었다면 — 그것은 토키의 자유였다. 헤어진 사이였으므로. 후부키가 일방적으로 기다렸을 뿐이므로. 토키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러니까 토키가 5년 사이에 누군가와 밤을 보냈다 해도 — 그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배신이 아니었다. 후부키가 상처받을 권리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상처받고 있었다. 상상만으로. 증거도 없이. 빈 칸 다섯 개와 유통기한 숫자 하나만으로. 후부키의 가슴 아래쪽에서 덩굴이 갈비뼈를 감고 조이고 있었다.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5층. 토키의 현관 앞에 섰다. 슬리퍼를 벗었다. 문을 열었다.
토키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후부키가 만든 달걀프라이를 먹고 있었다. 터진 노른자가 밥 위에 흘러내려 있었다. 젓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의 아침이었다.
웃었다. 다정하게. 평소처럼. 맞은편에 앉았다. 자신의 달걀프라이 여덟 조각이 그대로 접시 위에 남아 있었다. 후부키는 젓가락을 들었다. 한 조각을 집어 올렸다. 입에 넣었다. 씹었다. 맛이 나지 않았다.
씹으면서 토키를 보고 있었다.
토키의 손. 젓가락을 쥔 손. 베이스 현을 짚던 굳은살이 박힌 검지와 중지. 그 손이 5년 사이에 — 누군가의 피부 위를 지나간 적이 있는지. 후부키는 그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화제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노골적이었다. 후부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다. 침묵하면 생각이 자라났으므로. 말을 하면 — 말을 하는 동안만은 — 빈 칸 다섯 개를 세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젓가락으로 달걀프라이를 한 조각 더 집어 올렸다. 입에 넣지 않았다. 올려놓기만 했다. 접시 위에서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의미 없는 이동이었다.
후부키의 은색 눈이 토키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토키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 '아무도 없었다'는 증거를 —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흐린 하늘이 더 낮아졌다. 비가 올 것 같은 습도가 토키의 원룸 안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후부키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토키의 옆에. 평소라면 어깨에 기대거나 무릎에 손을 올리거나 — 접촉이 있었을 거리. 그런데 오늘은 어깨가 닿지 않았다. 주먹 하나 들어갈 거리가 비어 있었다.
후부키가 의식적으로 벌려놓은 거리였다.
불렀다. 이름을.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호출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에 이어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부키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열렸다가 닫혔다. 금붕어처럼.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5년 사이에 누구 만났어?
——라고 물으면.
——토키가 뭐라고 할까.
삼켰다. 말을. 평소의 습관이었다. 부끄러운 말을 할 때마다 '잊어'라고 덮었던 것처럼. 불안한 질문을 할 때마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삼키는 것. 후부키의 거절 회피가 — 지금 이 순간에도 — 작동하고 있었다.
물어봤다가 토키가 불쾌해하면.
물어봤다가 토키가 '있었어'라고 대답하면.
물어봤다가 — 토키가 '왜 그런 걸 물어?'라고 하면.
후부키는 어떤 대답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소파 위에서 후부키의 손이 자신의 무릎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무릎뼈를 누르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토키가 고개를 돌렸다. 후부키를 보았다. 후부키는 곧바로 손에서 힘을 뺐다. 무릎 위의 손가락을 펴고 허벅지 위에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무렇지 않은 자세. 연기였다.
웃었다. 입꼬리만. 눈은 웃지 않았다. 토키의 시선이 후부키의 얼굴 위를 지나가는 동안 후부키는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평소처럼. 다정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토키의 시선이 떨어졌다. 후부키는 숨을 내쉬었다. 소리 없이.
오후 두 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원룸의 작은 창을 두드렸다. 후부키가 토키의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화면을 보는 것 같았지만 스크롤이 멈춰 있었다. 같은 화면을 7분째 보고 있었다.
후부키의 엄지가 화면 위에서 움직였다. 검색창에 글자를 입력했다.
「コンドーム 使用期限」
콘돔 사용기한.
검색 결과가 떴다. 첫 번째 링크. 제조사 공식 사이트. '라텍스 콘돔의 사용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약 5년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라텍스의 열화로 인해 파손 위험이 있으므로 사용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후부키의 눈이 그 문장 위에 멈췄다.
5년.
제조일로부터 5년.
유통기한이 2025년 12월이라면 — 제조일은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 토키가 그 콘돔을 산 것은 2021년 이전이라는 뜻이었다. 토키와 후부키가 헤어진 것이 2021년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산 것일 수도 있다.
——후부키와 쓰려고.
——16살 때.
후부키의 손이 멈췄다.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16살. 처음 사귀었을 때. 그때는 — 키스까지밖에 하지 못했다. 몸을 섞지 않았다. 서로 어렸으므로. 그런데 토키가 콘돔을 준비해두었다면 — 후부키와 쓰려고 사둔 것이라면 —
후부키의 귓바퀴가 붉어졌다. 천천히. 목까지 번졌다.
——나랑 쓰려고 사뒀던 거야?
——5년 전에?
——그걸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덩굴이 풀렸다. 갈비뼈를 감고 있던 것이 — 한꺼번에 — 풀려내렸다. 대신 다른 것이 차올랐다. 명치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부끄러움과 안도와 미안함이 뒤엉킨 것이. 후부키가 혼자서 상상하고 혼자서 상처받고 혼자서 의심한 것이 전부 — 전부 —
목소리가 갈라졌다. 평소의 사근사근함이 벗겨진 아래. 날것의 목소리였다. 후부키가 스마트폰을 소파 쿠션 위에 내려놓고 토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주먹 하나 벌려놓았던 거리를 — 자기가 벌려놓았던 거리를 — 자기가 좁혔다. 어깨가 닿았다. 팔이 닿았다. 후부키의 손이 토키의 손을 잡았다. 젓가락을 쥐었던 손. 굳은살이 박힌 손.
말했다. 삼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네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배운 것을 — 일주일 만에 — 실행하고 있었다. '잊어'라고 덮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삼키지 않는 것.
후부키의 은색 눈이 토키의 회색 눈을 보았다. 눈가가 붉었다. 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끄러워서 붉은 것이었다.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 토키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워서. 콘돔의 유통기한조차 모르면서 빈 칸을 세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확인이었다. 자기 안에서 이미 답이 나온 뒤의 확인. 그런데 후부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손도 떨리고 있었다. 토키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이.
고백이었다. 오해의 고백. 후부키가 토키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은발 사이로 후부키의 이마가 보였다. 빗소리가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7월의 비. 습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후부키의 흑발이 습기를 머금어 볼에 달라붙어 있었다.
말끝이 흐려졌다.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잤을지도 모른다고'라는 마지막 단어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흐려진 말끝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문장이었다.
후부키의 손이 토키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끼어들었다. 깍지가 되었다.
웃었다. 이번에는 자조였다.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눈이 웃지 않았다. 5년 동안 기다렸다고 말한 사람이 — 토키만을 기다렸다고 확언한 사람이 — 콘돔 빈 칸 다섯 개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보 같았다. 후부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 —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빗소리가 세졌다. 창 밖의 코마바가 빗줄기에 흐려지고 있었다. 후부키의 손이 토키의 손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런데 토키의 굳은살 박힌 손가락은 그런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는 데 익숙했다. 현의 진동을 감지하는 손이었으므로.
토키는 후부키를 보았다. 그가 아침부터 이상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토키는 그를 보았다.
바보네.
두 글자가 빗소리 사이로 떨어졌다. 또렷했다. 토키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다. 적은 양으로 많은 것을 잘랐다. 군더더기 없이. 칼날처럼이 아니라 — 조율된 현처럼. 울림이 있었다. 짧은데 오래 남는 종류의.
후부키의 손이 토키의 손 안에서 한 번 움찔했다.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땀이 배어 있었다. 7월의 습기인지 후부키의 긴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토키가 보고 있었다.
후부키를. 회색 눈이 은색 눈을 보고 있었다. 후부키의 눈가가 붉었고, 코끝이 붉었고, 귓바퀴까지 붉었다. 아침부터 숨겨온 것이 한꺼번에 벗겨진 얼굴이었다. 달걀 노른자를 터뜨리고, 접시 위의 달걀을 여덟 조각으로 자르고,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주먹 하나만큼 거리를 벌리고,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삼키고, 검색창에 'コンドーム 使用期限'을 입력했던 사람의 얼굴이. 전부 벗겨져 있었다.
토키는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후부키의 웃음이 평소와 달랐다는 것을. 입꼬리의 각도가 같았고 눈이 가늘어지는 타이밍도 같았지만 — 어딘가가 달랐다. 달걀 노른자를 터뜨린 것이 증거였다. 후부키의 요리는 실수하지 않는다. 토키의 달걀프라이는 반숙이어야 한다는 것을 후부키의 손은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 손이 실수했다는 것은 — 손이 아닌 다른 곳에 힘이 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토키는 기다렸다. 아침부터. 후부키가 말할 때까지. 묻지 않았다. 재촉하지 않았다.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했을 때도 보냈고, 돌아와서 '왜?'라고 웃었을 때도 받아주었고,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삼켰을 때도 — 그 삼킴을 보았지만 꺼내지 않았다.
토키의 방식이었다. 현을 너무 세게 당기면 끊어진다. 후부키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5년 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부키가 말했다.
후부키가 말했으므로 — 토키도 말했다.
내가 후부키밖에 없다는 것까지. 전부. 다 알았어?
'전부'와 '다'가 겹쳐 있었다. 같은 뜻의 단어를 두 번 놓는 것은 토키의 버릇이 아니었다. 토키는 불필요한 반복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복했다. '전부'로 부족해서 '다'를 덧붙인 것이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 부족하지 않게 하려고.
후부키의 은색 눈이 흔들렸다.
흔들리고 나서 — 차올랐다. 수면이 올라오듯. 느리게. 속눈썹 아래로 물기가 맺혔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표면장력이 버티고 있었다. 후부키의 속눈썹은 길었으므로 물방울 하나 정도는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끝에서. 마지막 발음이 흔들려 거의 들리지 않았다. 빗소리에 묻혔다. 그런데 토키에게는 들렸다. 들리지 않아도 —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진동이 있었으므로.
반복이었다. '알고 있는데'를 두 번. 토키의 '전부'와 '다'처럼.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것은 — 한 번으로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후부키의 깍지 낀 손이 토키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토키의 굳은살 박힌 손가락 사이에 후부키의 손가락이 끼어들어 있었다. 땀이 배어 있었다. 미끄러웠다. 그런데 놓지 않았다.
말이 끊겼다. 한 박. 빗소리가 그 한 박을 채웠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불규칙한 리듬. 후부키의 호흡이 그 리듬을 따라갔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후부키의 손이 깍지에서 풀려 — 토키의 손을 잡은 채로 — 자신의 명치 위에 갖다 놓았다. 토키의 손등이 후부키의 셔츠 위에 닿았다. 가슴뼈 아래. 심장보다 낮은 곳. 위장보다 높은 곳. 그 중간 지대에서 후부키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빠르게. 토키의 손등에 그 박동이 전해졌다.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나. 후부키의 왼쪽 눈에서. 볼을 타고 내려갔다. 턱선을 따라 흘러 — 토키의 손등 위에 떨어졌다. 뜨거웠다. 7월의 비보다 뜨거운 온도.
후부키가 고개를 숙였다. 토키의 손 위에 이마를 대었다. 자신의 명치 위에 놓인 토키의 손. 그 손등에 이마를. 은색 눈이 감겼다.
말끝이 토키의 손등 위에서 녹았다. 이마를 대고 있었으므로 목소리가 살갗을 타고 전해졌다. 진동으로. 현의 울림처럼.
빗소리가 세졌다. 창틀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원룸 안을 채웠다. 후부키의 어깨가 한 번 떨렸다. 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웃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우스워서. 토키의 손등 위에 이마를 대고 — 웃고 있었다.
토키의 반복을 돌려주었다. '전부'를 두 번. 이마를 들어 토키의 회색 눈을 보았다.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은색 눈이 빗물에 씻긴 유리처럼 맑았다.
후부키의 손이 올라왔다. 토키의 볼에 닿았다. 손바닥이 넓게 펴져 턱선을 감쌌다. 엄지가 광대뼈 아래를 한 번 쓸었다.
부끄러운 말이었다. 콘돔을 사겠다는 선언이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가 약국에서 콘돔을 고르는 장면을 상상하면 — 후부키의 귀가 더 붉어졌다. 목까지. 쇄골까지.
그런데 '잊어'라고 덮지 않았다. 이번에는. 말한 채로 두었다. 토키의 볼을 감싼 손바닥 안에서 — 부끄러움째로.
빗소리가 원룸을 감싸고 있었다. 7월의 비. 후부키의 손이 토키의 볼 위에 머물러 있었다.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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