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샘 미니 키링 (클래식)
사진 잡지 사러 갔다가 캐릭터 코너 지나침. 펭귄이 눈에 들어왔음. 둥글고 큼. 그게 전부. 카메라 가방에 달 만한 크기여서 샀음. 3.99달러. 펭귄한테 3.99달러 쓴 걸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음.

사진 잡지 사러 갔다가 캐릭터 코너 지나침. 펭귄이 눈에 들어왔음. 둥글고 큼. 그게 전부. 카메라 가방에 달 만한 크기여서 샀음. 3.99달러. 펭귄한테 3.99달러 쓴 걸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음.
다이소에서 필름 보관함 사다가 계산대 옆에 있었음. 방수 스티커. 노트북에 붙이면 안 벗겨질 것 같아서. 펭귄이 우산 쓰고 서 있는 디자인. 비 오는 날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내 해석이 아니라 디자인이 그렇게 생긴 거. 1.50달러.
렌즈 캡이랑 SD카드 넣을 파우치가 필요했음. 무지 파우치 옆에 턱시도샘 파우치가 있었음. 네이비 바탕에 턱시도샘이 한 마리만 앉아 있는 디자인. 심플함. 실용적. 캐릭터 파우치를 산 건 이게 처음인데, 필요했으니까 산 거. 6.99달러.
사진 인화한 거 노트에 붙일 때 쓸 테이프. 무지 테이프를 사려다가 턱시도샘 패턴이 있길래. 펭귄이 일렬로 걸어가는 패턴. 뒤뚱거리는 게 —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감상인데 — 걸음이 좀 투박해 보였음. 투박한 걸음. 누구 걸음이 투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 안 남. 3.50달러.
기존 텀블러 뚜껑이 깨져서 새로 검색함. "tumbler stainless" 검색하다가 추천 상품에 턱시도샘 보온 텀블러가 떴음. 네이비. 심플. 캐릭터가 작게 각인되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그냥 무지 텀블러 같음. 그래서 샀음. 남들 눈에 안 띄니까. 14.99달러. 그런데 왜 하필 이 캐릭터가 추천에 떴는지는 — 검색 알고리즘 때문이겠지.
세제 사러 타겟 갔다가. 캐릭터 코너를 일부러 지나간 건 아닌데, 동선상에 있었음. 턱시도샘 미니 인형. 앉아 있는 포즈. 통통한 배가 앞으로 나와 있고 양팔이 짧아서 무릎에 못 올림. 그냥 양옆으로 벌리고 앉아 있음. ……이 자세가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는데 특정하지 못함. 7.99달러. 책상 모니터 옆에 놓았음.
수업 노트 필기용. 기존 볼펜 잉크 떨어져서 새로 삼. 펭귄이 볼펜 끝에 매달려 있는 디자인. 글씨 쓸 때마다 펭귄이 흔들림. 수업 중에 무심코 쳐다봤는데, 검은 머리카락 — 깃털이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음. 누군가의 앞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거랑. ……바람이 불면 앞머리가 눈 위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1.50달러.
산타모니카에서 스냅 촬영 후 시간 남아서 쇼핑몰 들어감. 산리오 매장을 일부러 들어간 건 — 맞음. 인정. 에코백. 검은 캔버스에 턱시도샘이 뒷모습으로 서 있는 디자인. 뒤통수만 보이는데 나비넥타이 매듭이 뒷목에 살짝 보임. 뒷모습. 넓은 등. ……촬영 중에 피사체의 뒷모습을 자주 찍는 편인데, 특정 인물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 건 아님. 9.99달러.
유니클로에서 양말 사러 갔는데 산리오 콜라보 출시됨. 턱시도샘 양말. 발등에 펭귄 얼굴이 있음. 신으면 바지 밑으로 안 보임. 아무도 모름. 나만 앎. ……양말 안쪽에 캐릭터가 있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음. 숨겨진 것에 대한 선호? 분석하지 않겠음. 7.90달러.
기숙사에서 쓸 머그컵. 기존 거 안 깨졌는데 새로 삼. 턱시도샘이 양팔 벌리고 서 있는 디자인. 400ml. 큼. 이 펭귄은 왜 항상 양팔을 벌리고 있는 건지. 안아달라는 건지. 안아달라는 거면. ……커피 마실 때마다 펭귄이 나를 올려다봄. 눈이 큼. 검은 눈. 둥근 눈. 소호의 눈도 검고 둥글고 큼. ……아님. 비교 안 했음. 12.99달러.
6종 세트 중에 낚시하는 포즈만 단품으로 삼. 펭귄이 낚싯대를 들고 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음. 기다리는 자세.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등. 누군가가 카페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던 등이 떠올랐는데 — 비교하지 않겠음. 4.99달러. 책상 위 미니 인형 옆에 놓았음.
기숙사 담요가 얇아서. 10월 들어 밤에 추워서. 네이비 바탕에 턱시도샘이 별 사이에 떠 있는 디자인. 검은 하늘에 검은 펭귄. 어둠 속에 조용히 있는 존재. 이불 덮고 누우면 펭귄이 얼굴 옆에 옴. ……소호가 이불 속에서 나를 보는 각도와 이 펭귄이 나를 보는 각도가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음. 안 했음. 18.99달러.
에치에서 턱시도샘 모양 향초 발견. 오션 브리즈 향. 바다 냄새. 소호한테서 바다 냄새가 나는 건 아닌데 — 히노키 오일 냄새가 나는데 — 이 향초를 보고 소호를 떠올린 건 아님. 펭귄이 바다에 사니까 오션 브리즈인 거. 논리적. 13.50달러. 책상 구석에 놓았는데 아직 안 켰음. 켜면 뭔가가 확정될 것 같아서.
iPhone 15 Pro case navy 검색했는데 턱시도샘 케이스가 세 번째에 떴음. 네이비 바탕에 턱시도샘이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디자인. 뒤통수. 넓은 등. 나비넥타이 매듭. ……소호가 앞에서 걸을 때 뒤통수가 보이는데. 검은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닿는 부분. 이 케이스의 펭귄 뒤통수가. ……샀음. 15.99달러. 비교 안 했음.
산타모니카 매장 세 번째 방문. 이번에는 — 인정함. 일부러 들어감. L사이즈 인형. 35cm. 서 있는 포즈. 양팔을 살짝 벌리고 있음. 안아달라는 건지 뭔지. 배가 둥글고 몸이 크고 눈이 크고 검음. 만졌을 때 촉감이 부드러웠음. ……안았을 때 팔 안에 들어오는 부피감이. 소호를 안았을 때와는 당연히 다름. 당연히. 소호는 192cm이고 이건 35cm. 스케일이 다를 뿐. ……'스케일이 다를 뿐'이라는 문장을 왜 생각했는지 모르겠음. 24.99달러. 침대 위에 놓았음. 벽 쪽으로.
할로윈 카니발 전. 산타모니카 매장. 한정판. 턱시도샘이 뱀파이어 코스튬을 입고 있음. 검은 망토. 안감이 짙은 남색. 작은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소호. 소호의 송곳니가 떠올랐음. 소호는 웃을 때 오른쪽 송곳니가 살짝 보이는데. 이 펭귄의 송곳니 각도가. 같았음. 인정함. 이건 인정. 이 펭귄을 보고 소호를 떠올렸음.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7.99달러. 카메라 가방에 달았음. 8월에 단 첫 키링 옆에. 두 마리가 나란히 매달려 흔들렸음.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오후 4시 02분.
소호가 레이의 기숙사에 온 건 오늘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10월 초, 레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죽을 가져다준 날이었고, 그때는 현관에서 죽을 건네고 돌아갔으니 방 안에 제대로 들어온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소호는 미소시루가 담긴 보온 용기를 양손에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레이가 문을 열었다. 소호가 들어왔다. 신발을 벗었다. 일본식으로 가지런히 놓았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소호의 시선이 현관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선반으로 이동하는 동안 — 그의 표정이 천천히 변했다. 다정한 미소에서 의아함으로, 의아함에서 혼란으로.
책상 모니터 옆에 턱시도샘 미니 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 낚시하는 턱시도샘 피규어. 머그컵에는 양팔 벌린 턱시도샘. 볼펜 끝에 매달린 턱시도샘. 파우치는 네이비 턱시도샘. 침대 위에는 35cm 턱시도샘 인형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고, 그 위로 턱시도샘 담요가 덮여 있었다. 카메라 가방 지퍼에는 턱시도샘 키링이 두 개 — 클래식과 뱀파이어가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폰케이스에도. 에코백에도.
전부 같은 캐릭터였다.
소호는 침대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35cm 턱시도샘 인형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턱시도샘 담요 위에. 양팔을 벌린 채.
소호의 손이 천천히 뻗어 인형의 머리를 만졌다. 둥글고 매끈한 촉감. 검은 깃털 — 머리카락 — 을 엄지로 쓸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레이를 보았다.
인형을 보았다.
레이를 보았다.
소호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올라갔다가, 진지해지려고 애쓰듯 내려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올라갔다.
소호는 책상 위 낚시하는 턱시도샘 피규어를 집어 들었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는 포즈. 낚싯대를 든 작은 펭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숨을 들이쉬었다.
소호가 돌아섰다. 갈색 눈이 레이를 정면으로 잡았다.
그 질문은 추궁이 아니었다. 소호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눈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 눈 안쪽 어딘가가 젖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닮은 것을 사 모으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소호는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는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소호의 질문이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열여섯 마리의 턱시도샘이 사방에서 레이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소호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눈으로.
레이의 시선이 처음으로 방 안을 소호의 눈으로 훑었다.
펭귄. 펭귄. 전부 같은 펭귄.
침묵이 길어졌다. 레이의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 미니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앉아 있는 포즈. 양팔을 벌린 10cm짜리 펭귄. 검은 눈. 둥근 눈. 배가 둥글고 몸이 크고.
소호.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레이의 손가락이 인형 위에서 멈췄다.
소호는 기다렸다. 문 앞에서 오니기리를 건네고 돌아가는 대신, 처음으로 이 방 안에 서서, 레이가 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조용히. 낚시하는 턱시도샘처럼. 아무 말 없이. 그냥 거기에 서서.
레이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다시 열렸다.
소호가 먼저 말했다. 부드럽게.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35cm 턱시도샘 인형이 소호의 허벅지 옆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소호와 인형이 나란히 앉아 레이를 올려다보는 구도. 192cm와 35cm가 같은 각도로.
소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인형의 머리를 쓸었다. 검은 깃털. 둥근 머리. 소호는 그 동작을 하면서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손이 움직였을 뿐이었다. 레이의 머리카락을 쓸 때와 같은 압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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