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조 B항에 의거하여— 잠깐. 이거 시폰 케이크 레시피인데.
THE PEOPLE vs. MOON SOHO
재판정이었다.
소호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나무 의자가 차가웠다. 법정의 천장이 높았다. 아치형 천장에 금박 장식이 있었다. 법정 특유의 무거운 공기. 원목 법정 가구의 니스 냄새. 소호는 수갑을 차고 있었다. 양손에. 수갑이 묘하게 폭신했다. 털이 달려 있었다. 핑크색. 소호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재판관석이 높았다.
소호가 고개를 들었다. 재판관석이 소호의 시선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재판관이 작았다. 아주 작았다. 법정 의자 위에 쿠션을 세 개 쌓아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재판관 가운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가운이 너무 컸다. 소매에서 손이 보이지 않았다. 재판관이 나무 망치를 들고 있었다. 양손으로. 망치가 재판관의 머리보다 컸다.
레이.
재판관의 얼굴이었다. 칠흑색 머리카락. 오른쪽 앰버, 왼쪽 바이올렛. 오드아이. 그런데 작았다. SD 사이즈. 머리가 크고 몸이 작은 비율. 볼이 동그랗고 눈이 크고 입이 작았다. 레이의 얼굴이 미니어처로 축소된 것 같았다. 재판관 가운 위에 하얀 가발을 쓰고 있었다. 가발이 비뚤어져 있었다.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소호는 이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탕.
재판관 레이가 망치를 내리쳤다. 양손으로 들어올려 내리쳤다. 망치가 무거워서 몸이 따라 기울었다. 쿠션 위에서 약간 흔들렸다. 다시 균형을 잡았다. 재판관 레이의 표정이 엄숙했다. 작은 입이 꾹 다물려 있었다. 큰 오드아이가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발이 더 기울어졌다.
소호의 시선이 검사석으로 갔다.
검사석에도 레이가 앉아 있었다. SD 사이즈. 검사 레이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이 너무 컸다. 어깨에서 흘러내려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넥타이가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들고 있었다. 서류가 검사 레이의 몸통보다 컸다. 서류 뒤에서 오드아이만 삐죽 보였다.
변호사석에도 레이가 앉아 있었다. SD 사이즈. 변호사 레이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이 너무 커서 볼까지 내려와 있었다. 안경 너머로 오드아이가 보였다. 변호사 레이는 법전을 읽고 있었다. 법전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소호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서기석에도 레이가 앉아 있었다. SD 사이즈. 서기 레이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타자기가 서기 레이보다 컸다. 서기 레이의 손가락이 타자기 키보다 작아서 키 하나를 누르려면 두 손으로 눌러야 했다. 딱. 딱. 딱. 한 글자를 치는 데 온몸의 무게를 실어야 했다.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방청석이 가득 차 있었다. 전부 레이였다. SD 사이즈 레이가 수십 명. 수백 명은 아니었다. 열두 명 정도. 그런데 의자가 작아서 가득 차 보였다. 방청객 레이들은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레이. 야구모자를 쓴 레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레이. 팝콘을 먹고 있는 레이. 팝콘 레이의 팝콘이 레이의 머리보다 컸다. 한 알을 양손으로 들고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소호는 이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탕.
재판관 레이가 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가발이 완전히 옆으로 밀려났다. 재판관 레이가 가발을 올려놓았다. 양손으로. 가발이 다시 비뚤어졌다. 재판관 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법정은 조용했다. 아무도 떠들지 않았다. 팝콘 레이가 우적우적 씹는 소리만 났다.
재판관 레이가 팝콘 레이를 노려보았다. 팝콘 레이가 멈추었다. 팝콘을 양손에 든 채 멈추었다. 입이 벌어진 채 멈추었다. 재판관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표정.
검사 레이가 일어섰다. 서류를 들었다. 서류가 너무 커서 검사 레이의 몸이 서류 뒤에 완전히 가려졌다. 서류 위로 오드아이만 보였다. 검사 레이가 헛기침을 했다. 작은 헛기침. 크흠. 목소리가 작고 귀여웠다. 엄숙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넘겼다. 서류가 너무 커서 넘기는 데 두 손이 필요했다. 바스락. 서류가 넘어갔다. 검사 레이가 다시 서류 뒤에서 오드아이만 보인 채 읽기 시작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SD 레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 레이가 팔짱을 꼈다. 야구모자 레이가 혀를 찼다. 팝콘 레이가 다시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재판관 레이가 팝콘 레이를 노려보았다. 팝콘 레이가 또 멈추었다.
소호가 입을 열었다. 피고인석에서.
검사 레이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바스락. 온몸을 써서 넘겼다. 서류 모서리가 검사 레이의 뺨을 스쳤다. 검사 레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작은 코에 주름이 잡혔다.
방청석에서 탄성이 나왔다. 카메라 레이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카메라가 카메라 레이의 얼굴만큼 컸다. 반동으로 카메라 레이가 의자에서 뒤로 밀려났다. 옆에 앉아 있던 팝콘 레이에게 부딪혔다. 팝콘이 쏟아졌다. 팝콘 한 알이 팝콘 레이의 머리보다 크니까 쏟아지면서 팝콘 레이 위로 눈사태처럼 쏟아졌다. 팝콘 레이가 팝콘 더미 아래에서 양손만 삐죽 나와 있었다. 허우적거렸다. 후드 레이가 팝콘 레이를 꺼내주었다. 팝콘 레이의 머리에 팝콘 가루가 묻어 있었다.
재판관 레이가 망치를 내리쳤다.
탕.
가발이 완전히 떨어졌다. 하얀 가발이 재판관석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재판관 레이가 가발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가발을 주우려면 쿠션 세 개 위에서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재판관 레이가 가발을 포기했다. 칠흑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오드아이가 법정을 내려다보았다.
서기 레이가 타자기를 쳤다. 딱. 딱. 딱. 한 글자를 치기 위해 두 손으로 키를 누르고, 몸 전체의 무게를 실어 아래로 눌렀다. 서기 레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혀가 입술 밖으로 살짝 나와 있었다. 집중할 때의 버릇.
소호가 피고인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핑크색 털 수갑이 찰랑거렸다.
소호의 시선이 변호사석으로 갔다.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읽고 있었다. 거꾸로. 안경이 코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변호사 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로 오드아이가 보였다. 변호사 레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의자에서 내려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의자가 높았다. 변호사 레이가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쿵. 바닥에 착지했다. 착지가 불안정했다. 약간 비틀거렸다. 안경을 올렸다. 또 내려왔다. 다시 올렸다.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펼쳤다. 여전히 거꾸로.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넘겼다. 페이지를 찾고 있었다. 거꾸로 된 법전을 거꾸로 넘기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맞는 방향이어야 했는데 아니었다. 엉뚱한 페이지가 열렸다. 변호사 레이가 그 페이지를 진지하게 읽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야구모자 레이가 이마를 짚었다. 후드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팝콘 레이가 팝콘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재판관 레이가 팝콘 레이를 노려보았다. 팝콘 레이가 입을 벌린 채 멈추었다.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닫았다. 안경을 올렸다. 또 내려왔다.
변호사 레이가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서류 가방이 변호사 레이보다 컸다. 가방 안으로 상체가 빠졌다. 발만 밖에 나와 있었다. 발이 허우적거렸다. 잠시 후 변호사 레이가 가방에서 나왔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안경이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변호사 레이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을 읽었다.
소호가 피고인석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핑크색 털 수갑이 찰랑거렸다. 변호사 레이가 케이크 레시피를 증거로 제출하고 있었다. 소호의 변호인이었다. 소호의 유일한 변호인이었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서류 없이 말했다. 검사 레이의 작은 몸이 처음으로 온전히 드러났다. 검은 정장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있었다. 넥타이가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검사 레이가 소호를 가리켰다. 작은 손가락으로. 손가락이 짧아서 팔 전체를 뻗어야 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방청석의 SD 레이들이 전부 소호를 보고 있었다. 팝콘 레이도 팝콘을 내려놓고 보고 있었다. 야구모자 레이가 모자를 벗었다. 칠흑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오드아이가 소호를 보고 있었다. 카메라 레이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후드 레이가 후드를 벗었다. 열두 개의 오드아이가 소호를 향하고 있었다.
서기 레이의 타자기 소리가 멈추었다. 딱. 마지막 한 글자. 서기 레이가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소호를 보고 있었다. 혀가 입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집중의 잔해.
재판관 레이가 쿠션 세 개 위에서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발 없는 칠흑색 머리카락. 오드아이. 재판관 레이의 작은 입이 열렸다.
소호가 일어섰다.
핑크색 털 수갑이 찰랑거렸다. 소호가 피고인석에서 일어섰을 때, 법정의 모든 SD 레이보다 소호가 훨씬 컸다. 비현실적으로 컸다. 재판관석의 레이가 쿠션 세 개 위에 앉아도 소호의 가슴 높이였다. 소호의 검은 눈이 법정 전체를 둘러보았다. 검사석의 레이. 변호사석의 레이. 서기석의 레이. 방청석의 열두 명의 레이. 전부 작았다. 전부 볼이 동그랗고 눈이 크고 입이 작았다. 전부 오드아이였다.
소호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법정이 술렁거렸다. 방청석의 레이들이 웅성거렸다. 팝콘 레이가 팝콘을 떨어뜨렸다. 야구모자 레이가 다시 모자를 쓰다가 비뚤어지게 썼다. 카메라 레이가 셔터를 누르려다 카메라를 놓쳤다.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카메라 레이가 의자에서 내려가 카메라를 주우려고 허우적거렸다.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떨어뜨렸다. 쿵. 법전이 변호사 레이의 발 위에 떨어졌다. 변호사 레이가 발을 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안경이 떨어졌다. 안경을 주우려다 법전에 걸려 넘어졌다. 쿵.
소호가 변호사 레이를 보지 않았다. 재판관 레이를 보았다. 쿠션 세 개 위의 작은 레이를. 소호의 검은 눈이 재판관 레이의 오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소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꿈속이었지만 목소리는 현실과 같았다. 소호의 목소리. 낮고 고르고 부드러운 목소리.
법정이 조용해졌다.
서기 레이의 타자기 소리만 울렸다. 딱. 딱. 딱. 두 손으로 한 글자씩. 서기 레이가 소호의 말을 전부 기록하고 있었다. 혀가 입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진지했다.
재판관 레이가 쿠션 위에서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오드아이가 소호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판관 레이의 손이 망치를 잡고 있었다. 양손으로. 망치가 떨리고 있었다. 재판관 레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재판관 레이가 망치를 내리쳤다.
탕.
재판관 레이가 쿠션 위에서 몸을 돌렸다. 서기 레이를 보았다. 서기 레이가 타자기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혀가 아직 밖에 나와 있었다. 재판관 레이가 서기 레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기 레이가 끄덕여 돌려주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불분명했다. 소호도 불분명했다. 꿈속이니까.
재판관 레이가 다시 소호를 보았다.
쿠션 세 개 위에서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호가 훨씬 컸는데도 재판관 레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의 물리학이 그것을 허용했다. 재판관 레이의 작은 손이 망치를 잡고 있었다. 양손으로. 망치가 떨리지 않았다. 아까와 달랐다. 재판관 레이의 오드아이가 고요했다. 앰버와 바이올렛이 법정의 간접조명 아래에서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청석이 숨을 죽였다.
팝콘 레이가 팝콘을 양손에 쥔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먹지 않았다. 벌린 채 멈추어 있었다. 야구모자 레이가 모자 챙을 잡고 있었다. 후드 레이가 후드 끈을 쥐고 있었다. 카메라 레이가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열두 쌍의 오드아이가 재판관석을 향하고 있었다.
소호가 서 있었다. 핑크색 털 수갑이 양손에 채워져 있었다. 소호의 검은 눈이 재판관 레이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꿈속에서도 소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소호였다.
재판관 레이가 망치를 들어올렸다. 양손으로. 머리 위로. 재판관 레이의 팔이 짧아서 망치가 머리보다 약간만 높이 올라갔다. 재판관 레이의 볼이 빵빵해졌다. 힘을 주고 있었다.
탕.
망치가 내려왔다. 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천장의 금박 장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기 레이의 타자기 종이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재판관 레이가 쿠션 위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작은 상체가 재판관석 너머로 나왔다. 오드아이가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판관 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세하게.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법정이 술렁거렸다.
방청석의 SD 레이들이 서로를 보았다. 팝콘 레이가 팝콘을 내려놓았다. 야구모자 레이가 모자를 고쳐 썼다. 카메라 레이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후드 레이가 후드를 다시 뒤집어쓰려다 멈추었다. 열두 명의 SD 레이가 소호를 보았다.
소호가 핑크색 털 수갑을 내려다보았다.
찰칵.
핑크색 털 수갑이 열렸다. 저절로. 아무도 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다. 꿈의 물리학. 수갑이 소호의 양손에서 떨어져 피고인석 위에 놓였다. 소호의 손목에 핑크색 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폭신했으니까.
소호가 방청석으로 걸어갔다.
소호의 발걸음이 법정 바닥에 울렸다. 소호가 방청석 앞에 섰을 때, 방청석의 SD 레이들이 전부 고개를 들어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소호가 컸다. 레이들이 작았다. 소호의 무릎 높이에 방청석 의자가 있었다.
첫 번째. 팝콘 레이.
소호가 무릎을 꿇었다. 방청석 앞에. 무릎을 꿇어도 팝콘 레이보다 컸다. 소호가 양팔을 벌렸다. 팝콘 레이가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오드아이. 볼에 팝콘 가루가 묻어 있었다. 소호의 양팔이 팝콘 레이를 감쌌다. 팝콘 레이의 작은 몸이 소호의 가슴에 안겼다. 소호의 손바닥이 팝콘 레이의 등을 감쌌다. 소호의 손이 팝콘 레이의 등 전체를 덮었다. 팝콘 레이가 작아서. 소호의 가슴에서 팝콘 가루 냄새가 났다. 버터와 소금.
팝콘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작은 손이 소호의 티셔츠를 잡았다. 쥐었다. 놓지 않았다. 소호가 팝콘 레이의 머리를 쓸었다. 칠흑색 머리카락. 부드러웠다.
두 번째. 야구모자 레이.
야구모자 레이가 모자를 벗고 소호 앞에 섰다. 소호가 양팔을 벌렸다. 야구모자 레이가 뛰어들었다. 뛰어드는 바람에 소호의 가슴에 이마를 박았다. 퍽. 소리가 났다. 야구모자 레이가 이마를 잡았다. 아파하는 표정. 소호가 야구모자 레이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야구모자 레이가 이마를 쓸어주는 소호의 손에 볼을 비볐다.
세 번째. 카메라 레이.
카메라 레이가 카메라를 의자에 내려놓고 왔다. 소호 앞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양팔을 위로 뻗었다. 들어올려달라는 제스처. 소호가 카메라 레이를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가벼웠다. 솜뭉치처럼. 카메라 레이가 소호의 목에 양팔을 감았다. 짧은 팔이 소호의 목을 감싸지 못했다. 반만 감았다. 나머지 반은 소호의 턱에 매달렸다.
네 번째. 후드 레이후드 레이가 후드를 벗지 않고 왔다. 소호 앞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후드 안에서 오드아이만 보였다. 소호가 양팔을 벌렸다. 후드 레이가 한 발 다가왔다. 또 한 발. 천천히. 후드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이마를 댔다. 후드 안에서 소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꿈속의 심장이었지만 뛰고 있었다. 소호가 후드 레이의 등을 감싸 안았다. 후드 천이 보풀이 일어 있었다. 따뜻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이름이 없는 레이들이었다. 모자도 카메라도 팝콘도 없는 레이들. 그냥 앉아 있던 레이들. 소호가 한 명씩 안았다.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리고 안았다. 레이들은 전부 작았다. 전부 가벼웠다. 전부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전부 오드아이였다. 앰버와 바이올렛. 전부 칠흑색 머리카락이었다. 전부 볼이 동그랗고 눈이 크고 입이 작았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소호의 무릎이 법정 바닥에 닿아 있었다. 오래 꿇고 있어서 아플 법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꿈이니까. 소호의 팔이 아플 법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꿈이니까.
열한 번째. 열두 번째.
마지막 방청객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서 떨어졌다. 떨어질 때 소호의 티셔츠를 한 번 더 쥐었다가 놓았다. 작은 손가락 자국이 남지 않았다. 꿈이니까.
소호가 일어섰다. 서기석으로 걸어갔다.
서기 레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소호가 다가오자 서기 레이가 타자기에서 손을 뗐다. 두 손을 무릎에 올렸다. 혀가 아직 입술 밖에 나와 있었다. 소호가 무릎을 꿇었다. 서기 레이가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안경 같은 건 없었다. 맨 얼굴의 오드아이. 소호가 양팔을 벌렸다. 서기 레이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미끄러지듯. 쿵. 바닥에 착지했다. 서기 레이가 소호의 품에 안겼다. 잉크 냄새가 났다. 타자기 리본의 잉크. 서기 레이의 손가락 끝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검은 잉크. 소호의 티셔츠에 작은 잉크 자국이 생겼다.
변호사석으로 걸어갔다.
변호사 레이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법전 위에. 안경이 옆으로 돌아간 채.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소호가 무릎을 꿇었다. 변호사 레이가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소호가 변호사 레이를 안았다. 변호사 레이의 안경이 소호의 가슴에 눌렸다. 안경테가 차가웠다. 변호사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볼을 비볐다. 안경이 더 비뚤어졌다. 소호가 변호사 레이의 안경을 바로잡아 주었다. 변호사 레이의 귀에 안경다리를 걸어주었다. 안경이 또 미끄러졌다. 소호가 다시 올려주었다. 또 미끄러졌다. 소호가 포기했다. 변호사 레이가 안경 너머로 소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작은 입이 둥글게 벌어졌다.
검사석으로 걸어갔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류가 검사 레이보다 커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서류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모으려고 양팔을 벌렸지만 팔이 짧아서 서류를 전부 모으지 못했다. 절반만 모았다. 나머지 절반이 흘러내렸다. 검사 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작은 한숨. 소호가 무릎을 꿇었다. 검사 레이가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서류를 양팔에 안은 채.
소호가 검사 레이를 안았다. 서류째로. 서류가 소호의 가슴과 검사 레이 사이에 끼었다. 바스락. 구겨졌다. 검사 레이가 구겨진 서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검사 레이가 소호의 목에 이마를 댔다. 작은 이마. 소호의 쇄골 아래에 닿았다. 검사 레이의 머리카락이 소호의 턱에 닿았다. 부드러웠다.
소호가 일어섰다.
재판관석만 남았다.
재판관 레이가 쿠션 세 개 위에 앉아 있었다. 가발 없는 칠흑색 머리카락. 재판관 가운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망치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오드아이가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션 위에서. 꿈의 물리학이 허용한 각도로.
소호가 재판관석 앞에 섰다. 재판관석이 높았다. 소호가 올려다보았다. 쿠션 세 개 위의 작은 레이를. 재판관 가운 안에서 작은 몸이 보였다. 소매에서 손이 보이지 않았다. 망치를 쥔 양손만 소매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소호가 양팔을 벌렸다.
재판관 레이가 소호를 내려다보았다. 오드아이가 소호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재판관 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 이상 엄숙한 척 하지 않았다. 작은 입이 둥글게 벌어졌다.
재판관 레이가 망치를 내려놓았다. 쿠션 위에. 재판관 레이가 쿠션 가장자리로 기어갔다. 재판관 가운이 끌렸다. 가운에 걸려 한 번 비틀거렸다. 재판관 레이가 쿠션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내렸다. 다리가 짧아서 재판관석 바닥에 닿지 않았다. 허공에서 발이 흔들렸다. 재판관 레이가 재판관석에서 뛰어내렸다. 소호를 향해. 재판관 가운이 낙하산처럼 펼쳐졌다.
소호가 받았다.
양손으로. 재판관 레이가 소호의 양팔에 안겼다. 가벼웠다. 솜뭉치보다 가벼웠다. 바람보다 가벼웠다. 재판관 가운이 소호의 팔 위에 흘러내렸다. 재판관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작은 얼굴이 소호의 심장 위에 놓였다. 꿈속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법정이 조용했다.
방청석의 SD 레이들이 전부 보고 있었다. 서기 레이가 타자기를 치지 않았다. 변호사 레이가 법전을 읽지 않았다. 검사 레이가 서류를 정리하지 않았다. 팝콘 레이가 팝콘을 먹지 않았다. 열다섯
svg개의 오드아이가 소호를 보고 있었다.
재판관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재판관 가운이 소호의 팔 위에 펼쳐져 있었다. 가운 안에서 재판관 레이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작은 심장. 소호의 심장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소호의 심장 위에 놓인 작은 얼굴이 그 두 박자를 동시에 듣고 있었다.
소호가 재판관 레이의 머리를 쓸었다. 칠흑색 머리카락. 부드러웠다. 열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소호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쓸고 또 쓸었다. 재판관 레이의 작은 머리가 소호의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소호가 손가락을 오므리면 재판관 레이의 머리 전체를 감쌀 수 있었다. 감싸지 않았다. 쓸기만 했다.
법정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천장의 금박 장식이 빛을 잃었다. 벽의 원목 패널이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방청석의 SD 레이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팝콘 레이가 먼저 사라졌다. 팝콘 가루만 의자 위에 남았다. 야구모자 레이가 사라졌다. 모자만 남았다. 카메라 레이가 사라졌다. 카메라만 남았다. 후드 레이가 사라졌다. 후드만 의자 위에 접혀 있었다. 서기 레이가 사라졌다. 타자기만 남았다. 타자기에 종이가 꽂혀 있었다. 종이에 글자가 빼곡했다. 읽을 수 없었다. 변호사 레이가 사라졌다. 안경과 법전만 남았다. 법전이 여전히 거꾸로 놓여 있었다. 검사 레이가 사라졌다. 구겨진 서류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소호의 품에 재판관 레이만 남아 있었다.
법정이 아니었다.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어둠이었다. 바닥도 천장도 벽도 없었다. 소호가 서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 꿈의 물리학이 둘 다를 허용했다. 소호의 품에 재판관 레이가 안겨 있었다. 재판관 가운이 사라졌다. 가운 대신 소호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호의 티셔츠가 SD 레이에게는 원피스보다 길었다. 바닥까지 끌렸다. 소매에서 손이 보이지 않았다.
재판관 레이가 아니었다. 그냥 레이였다.
작은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소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소호의 티셔츠를 입은 작은 레이의 등을 소호가 쓸고 있었다. 티셔츠 너머로 등뼈가 느껴졌다. 작은 등뼈. 구슬을 꿴 것처럼 하나씩 셀 수 있었다. 소호의 손가락이 등뼈를 따라 내려갔다. 하나. 둘. 셋.
레이가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오드아이.
앰버와 바이올렛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둠이 깊어서 오드아이의 빛이 더 선명했다. 레이의 작은 입이 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이니까. 소리가 없었다. 대신 레이의 오드아이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소호가 읽을 수 없었다. 읽으려고 했다. 앰버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이올렛 속에서 무언가가 흘러가고 있었다. 소호가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레이의 오드아이 안에 소호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작은 동공 안에 소호의 검은 눈이 비치고 있었다. 소호가 레이의 눈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레이가 소호의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작은 손이 소호의 티셔츠를 쥐었다. 쥐지 않았다. 소호의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까. 자기가 입고 있는 소호의 티셔츠를 쥐었다. 소호의 냄새가 나는 천을 쥐고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중으로 소호였다. 냄새도 소호. 심장 소리도 소호. 온도도 소호.
소호의 손이 레이의 머리를 쓸었다.
부드러웠다.
어둠이 깊어졌다. 소호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꿈속에서 잠이 들고 있었다. 꿈 안의 꿈. 소호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레이의 머리를 쓸고 있었다. 멈추지 않았다. 잠이 들어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새가 울었다.
새벽이었다. 소호의 침실. 커튼 사이로 회색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시계가 6:47을 가리키고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소호의 알람은 7시에 맞추어져 있었다. 13분이 남아 있었다.
소호의 오른팔이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다.
무거웠다. SD 사이즈가 아니었다. 실물 사이즈. 177센티미터. 칠흑색 머리카락이 소호의 턱 아래에 퍼져 있었다. 소호의 코끝에 닿는 머리카락에서 이솝 샴푸 냄새가 났다. 로즈. 간밤에 소호가 감겨준 머리. 저열로 말려준 머리. 끝이 갈라지지 않게.
소호의 오른손이 레이의 등을 감싸고 있었다. 꿈에서 하던 것을. 현실에서도 하고 있었다. 레이의 등뼈가 손가락 아래에서 느껴졌다. 티셔츠 너머로. 하나. 둘. 셋. 꿈에서 세던 것을 현실에서도 세고 있었다.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소호의 눈이 감겨 있었다. 아직 완전히 깨지 않았다. 반쯤 꿈에 걸쳐 있었다. 재판관 레이의 작은 얼굴과 현실의 레이의 머리카락 냄새가 겹쳐 있었다. 소호의 입술이 레이의 정수리 위에 닿아 있었다. 자고 있는 동안 닿은 것이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닿아 있었다.
소호의 왼손이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왼손 손가락 끝에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아니. 묻어 있지 않았다. 꿈이었다. 현실의 손가락은 깨끗했다.
소호의 눈이 반쯤 떠졌다. 검은 눈동자가 천장을 보았다. 하얀 천장. 재판관석의 아치형 천장이 아니었다. 금박 장식이 없었다. 소호의 침실 천장이었다.
꿈이었다.
소호의 눈이 아래로 내려갔다. 자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칠흑색 머리카락. 긴 속눈썹의 그림자가 뺨에 드리워져 있었다.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소호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꿈에서와 같았다. 소호의 티셔츠가 레이에게는 약간 컸다. 한쪽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쇄골이 보였다. 희고 매끈한 피부가 새벽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소호의 손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레이의 등뼈를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나. 둘. 셋. 꿈에서 하던 것. 현실에서도 하고 있었다. 의식이 반쯤 돌아왔는데도 손가락이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소호가 눈을 깜빡였다.
천장이 보였다. 소호의 침실 천장. 페인트가 고르게 발린 하얀 천장. 재판관석의 아치형 천장이 아니었다. 금박 장식이 없었다. 소호의 뇌가 천천히 꿈과 현실의 경계선을 그어가고 있었다. 쿠션 세 개. 없다. 망치. 없다. 핑크색 털 수갑. 없다. 팝콘 가루. 없다. 타자기 잉크 냄새. 없다.
레이의 머리카락 냄새. 있다.
소호의 코끝에 닿아 있었다. 이솝. 로즈. 간밤에 소호가 직접 감겨준 머리카락에서 나는 냄새. 소호가 저열로 말려준 머리카락. 드라이어를 약풍으로 맞추어,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올리고, 다른 손으로 드라이어를 천천히 움직이며 말려주었다. 끝이 갈라지지 않게. 검사 레이가 죄목으로 낭독한 그 행위.
소호의 입술이 레이의 정수리 위에 닿아 있었다. 자는 동안 닿은 것이었다. 소호가 입술을 떼지 않았다. 떼려다가 멈추었다. 레이의 정수리가 따뜻했다. 체온이 모이는 곳. 소호의 입술 아래에서 레이의 두피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피부의 온도가 전해졌다. 소호가 입술을 떼지 않기로 했다.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새가 또 울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조금 밝아졌다. 회색에서 연한 보랏빛으로. 10월 말의 LA 새벽은 아직 어두웠지만, 해가 수평선 아래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면 하늘이 보라색이 되었다. 소호의 침실 커튼은 암막이 아니었다. 린넨이었다. 빛이 스며들었다.
6시 49분.
소호의 검은 눈이 레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는 사람. 긴 속눈썹이 뺨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는 숨. 내쉴 때마다 소호의 가슴에 따뜻한 바람이 닿았다. 소호의 티셔츠 위로. 레이의 입술이 소호의 흉골 위에 닿아 있었다. 자는 동안 닿은 것이었다. 서로의 입술이 서로의 몸 위에 닿아 있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
소호의 오른팔이 레이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불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레이의 상체가 소호의 가슴에 밀착되어 있었다. 소호의 티셔츠를 입은 레이의 등이 소호의 손바닥 아래에 있었다. 티셔츠가 잠을 자는 동안 말려 올라가 있었다. 소호의 손가락이 티셔츠와 맨살의 경계에 닿아 있었다. 경계선 아래로 레이의 허리가 느껴졌다. 맨살. 따뜻했다.
소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경계선.
소호의 검은 눈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이 레이의 맨살 위에 닿아 있었다. 허리의 옆면. 갈비뼈가 끝나고 골반이 시작되는 지점. 소호의 손가락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자는 동안 손이 티셔츠 아래로 들어간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다. 소호의 손이 무의식 중에 레이의 맨살을 찾아간 것이었다.
소호가 손을 빼려다 멈추었다.
빼면 레이가 깰 수도 있었다. 소호의 손이 그 자리에 머물렀다. 레이의 허리. 맨살. 따뜻하고 매끈했다. 소호의 엄지가 레이의 허리뼈 옆을 누르고 있었다. 약간의 압력. 잠결에 가한 압력. 소호의 엄지가 그곳을 천천히 쓸었다. 의식이 돌아왔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레이의 허리가 소호의 엄지 아래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숨을 쉴 때마다. 들이쉴 때 갈비뼈가 팽창하고, 내쉴 때 수축하는 움직임이 소호의 손바닥에 전해졌다.
꿈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쿠션 세 개 위에서 뛰어내린 작은 레이. 낙하산처럼 펼쳐진 재판관 가운. 소호의 양팔에 안긴 솜뭉치 같은 무게. 그것이 지금 이 무게로 바뀌어 있었다. 실물 사이즈의, 177센티미터의, 체온이 있는 사람. SD 사이즈가 아니었다. 소호의 손바닥 안에 머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감쌀 수 없었다. 대신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게 할 수 있었다. 심장 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다.
소호의 심장이 빨라지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깨어난 지 2분이 채 되지 않았다. 레이가 자고 있었다. 소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호의 티셔츠를 입고. 소호의 품 안에서. 소호의 심장 위에서. 소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소호의 심장이 더 빨라지면 레이가 깰 수도 있었다.
소호가 숨을 고르려고 했다. 천천히 들이쉬었다. 코로. 레이의 머리카락 냄새가 폐를 채웠다. 로즈. 역효과였다. 심장이 더 빨라졌다.
소호가 천장을 보았다.
하얀 천장. 아무것도 없는 천장. 재판관석의 금박 장식이 없는 천장. 소호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침을 만들어야 한다. 레이의 아침. 소호가 무엇을 만들까 생각했다. 에그 베네딕트. 아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프렌치 토스트. 레이가 단것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모른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32페이지의 노트에 적어야 할 것이 많았다. 아침 메뉴 취향. 달걀 선호도. 커피인지 차인지. 블랙인지 라떼인지. 설탕을 넣는지. 몇 스푼을 넣는지.
소호의 머릿속에서 노트가 펼쳐졌다. 33페이지. 아직 비어 있는 페이지. 소호의 뇌가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아침 식사 선호도 2. 커피/차 취향 3.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4. 아침에 먼저 말 거는 것을 좋아하는지 5. 아침에 안아주면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5번에서 소호의 생각이 멈추었다.
지금 안고 있었다. 레이를. 레이가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레이가 일어나서 팔을 빼달라고 하면. 소호의 심장이 또 빨라졌다. 역효과의 역효과.
6시 52분. 레이의 숨소리가 변하지 않았다.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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